네티즌을 위한 알기 쉬운 기독교 (49)
입력 2012-08-16 18:14
기독교인도 윤회와 전생을 믿는가
■ ‘전생에 죄가 많아서’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는데, 기독교에서도 전생을 믿습니까
■ 한때 ‘전생체험’이란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전생이란 무엇입니까
■ 불교의 윤회사상을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윤회와 전생이란 무엇인가?
윤회설(輪廻說)이란 생명이 있는 것, 즉 중생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힌두교와 불교의 사상입니다. 윤회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의 삼사라(samsara)를 번역한 말로서 전생(轉生), 재생(再生), 유전(流轉)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전생이란 이 윤회설에서 나온 신앙으로써, 한 번 죽었던 영혼이 다른 생물체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윤회라 한다면, 현재의 생명 이전의 삶을 전생(前生)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상은 기원전 600년쯤 우파니샤드(優波尼沙土)의 문헌에서 비롯되어 대중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지옥?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천상(天上)의 육도(六道:六趣)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윤회설의 기원과 역사
윤회사상의 역사는 기원전 150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아리아인들이 북인도의 펀자브 지역을 침공해 토착민들의 종교를 수용해 세운 종교가 브라만교인데, 이 교의 성전(聖典)이었던 리그베다에 전생과 윤회가 주요 교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전생과 윤회에 대한 사상은 인도의 철학과 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기원전 6∼4세기쯤 힌두교가 이 교리를 수용했고, 기원전 3∼2세기쯤에는 불교가 이 교리를 수용하게 되어 불교의 전파와 함께 우리나라에도 전생과 윤회사상이 전파됐던 것입니다.
인도뿐 아니라, 기원전 7∼5세기쯤의 고대 그리스에서도 전생과 윤회에 대한 교리를 가진 종교가 있었는데, 오르페우스교의 종교적 특색이 바로 전생과 윤회사상이었습니다. 이 종교에서는 영혼을 영원불멸하는 본질로 보고 과거의 죄에 의해 육체에 유폐된 영혼을 구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 외에도 기원전 6세기 수학의 대가였던 피타고라스도 자신의 교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영혼불멸, 윤회, 사후의 응보, 영혼의 정화와 구제 등이 주요 교리였다고 합니다. 철학자인 플라톤도 오르페우스교의 영향을 받아 상기설(想起說)이란 개념을 주장했는데, 이는 개인이 무엇을 깨우쳐 알아낸다고 하는 것은 이미 개인이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회상(상기)해 낼 뿐이라는 뜻입니다.
전생(轉-구를 전, 生-날 생)이란 육체에 들어왔던 영혼이 그 육체가 죽게 되면 다른 생명체로 마치 바퀴가 굴러가듯이 옮겨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윤회(輪-바퀴 윤, 廻-돌아올 회)라는 것은 마치 바퀴가 굴러가듯이 하나의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옮겨 다니는 영혼이 큰 수레바퀴처럼 다시 돌고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전생과 윤회사상을 믿는 수행자들의 최고의 소원은 이러한 윤회의 큰 수레에서 내려 더 이상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을 반복하지 않는 것인데, 이것을 해탈(解脫)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의 입장
이러한 신앙은 특히 인도사회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 계층이 운명적으로 정해지는 힌두교 사회에서 발전됐습니다. 수드라와 같은 천민계층으로 태어난 사람은 오직 다음 세상에서 브라만과 같은 좋은 계층으로 태어나는 것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타고난 운명을 바꾼다든지, 사회적 제도를 바꿔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그저 타고난 운명에 안주하여 살다가 다음 세상에서나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숙명론적 인생관이 그 밑바탕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러한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윤회사상과 전생신앙이 발전되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숙명론적 인생관을 부인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합니다.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도다”(고전 5:17).
이러한 기독교적 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인 민족과 국가는 신분의 차별, 불평등, 억압과 부자유를 극복하고, 모든 인간이 평등과 평화, 개성과 자유를 만끽하는 선진사회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 문화에서는 전생이나 윤회와 같은 운명론적 사상이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전생(前生)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아직까지 학문적 분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전생을 유사기억, 환상 또는 잠재의식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것은 유일회적(唯一回的) 사건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한 후에 영적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은 완전한 하나님의 주권이 통치하는 영역이며, 오직 주님의 빛과 생명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그곳에 들어간 생명은 이 땅에서의 삶을 평가받는 절차를 거치게 되며, 그 평가에 따라 그곳에서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 기독교의 사상입니다. 윤회와 전생 사상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죄짓지 말고 선하게 살라는 교훈으로는 바람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인간이 축생이나 아귀 같은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기독교의 사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강영선 한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