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재미있는 말의 유래

십년감수,내코가 석자,숙맥,시치미

dnssosl 2011. 4. 22. 16:30

 

<십년 감수>

 말 그대로  풀어 보면, 십 년이나  수명이 줄었다는 뜻으로 매우  놀랐을 때 쓰는 말이지요.
  구한말 고종 황제  때 유성기가 왕실에 처음 들어왔어요. 유성기는  오디오의 할아버지뻘 되는 기계로,  미국의 에디슨이 발명한 녹음기예요.

 이 기계를 처음 본 고종 황제는 매우 신기하게 여겼어요.
  "음.... 이 기계에서 정말 소리가 난단 말이지?"
  "예, 그렇사옵니다.... 폐하!"
  "허, 거참.... 괴이한지고. 여봐라, 누가 가서 얼른 박춘재를 데려 오너라!"
  박춘재는 당시 소문난  명창이었어요. 고종 황제는 그를 불러 이  기계가 정말 소리를 내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폐하, 부르셨습니까."
  "오, 어서 오시오.  이게 바로 이번에 서양에서 가져온  소리나는 기계요. 어서, 여기에 대고 노래를 불러 보시오."
  "예에? 기계에 대고 노래를 부르라구요?"
  박춘재가 머뭇거리자, 고종 황제는 다시 한 번 재촉했어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한 곡조 해 보시오."
  박춘재는 도통 입이 안 떨어졌지만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었어요.  마침내 박춘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을 뽑았어요.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찬 자리에...."
  처음엔 어색하던 것이 가락이 깊어 갈수록 절로 흥이 나 단숨에 한 곡조를 마쳤어요.
  "자, 그럼 춘재의 노래가 끝났으니 어서 기계를 돌려 보시오!"
  고종 황제는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를 재촉했어요. 기술자가  기계를 만지작거리자 드디어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요. 모두들 유성기 소리에 귀를  기
울였어요. 신기하게도 유성기에서는  방금 불렀던 노랫소리가 똑같이  흘러 나왔어요.
  "허허, 기이한 일이로고!"
  고종 황제는 눈이  휘둥그래졌어요. 고종 황제뿐 아니라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 깜짝 놀라 까무러칠 뻔했어요.
  "아...아니, 이...이럴 수가! 내 목소리가 저...저 기계에서 나오다니!"
  그 때 박춘재의 놀란 모습을 지켜 보던 고종 황제가 입을 열었어요.
  "춘재, 그대의 수명이 십 년은 줄었겠소(십년 감수)."
  고종 황제는 박춘재의 혼이 녹음기에 빼앗겨서 십 년쯤 수명이 줄었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이 때부터 '십년 감수'란 말이 생겼어요.

 

<내 코가 석자>

신라 시대 때 방이 형제가 살았어요. 동생은 부자였지만  형은 몹시 가난했어요.
  어느 날이었어요. 형 방이는 농사를 지으려고 동네에 한  마음씨 좋은 사람에게 땅을 빌렸어요. 그러나 형은 너무 가난한 나머지  뿌릴 씨앗조차 없
었어요.
  '옳지! 동생에게 가서 부탁해 보자.'
  형 방이는 동생을  찾아가 씨앗을 얻었어요. 그런데 심술궂은 동생은  싹을 틔울 수 없도록 씨앗을 삶아서 주었어요.
  형 방이는 그것도 모르고 씨앗을 심고 정성껏 돌보았어요.
  '이상하다. 왜 싹이 안 트지? 정성이 부족한 걸까?'  방이는 전보다 더 열심히 물을 주며 밭은 가꾸었어요.  방이의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어느 날 밭에는 딱 하나의 싹이 텄어요.  그 싹은 점점 자라더니 엄청나게 큰 이삭을  맺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 이삭을 잘라 물고 달아나는 게 아니겠어요?
  "앗! 거기 서라, 거기 서!"
  방이는 죽을 힘을 다해 새를 쫓았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어요. 날이 저물자 방이는 바위 틈새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어요. 막 잠이 들  무렵 요란한 소리가 들렸어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붉은 옷을 입은 도깨비들이 춤을  추며 놀기 시작했어요.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휘두르자 신기하게도 금이 생겼어요.
  "술 나와라, 뚝딱!"
  그러자 또 술이  나왔어요. 도깨비들은 방망이를 두들겨 술과 음식을  만들어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놀았어요. 새벽녘이 되자  도깨비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방망이만 남았어요.  방이는 그 방망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도깨비들이 한 것처럼 그대로 따라 해 보았어요.
  "금 나와라, 뚝딱! 옷 나와라, 뚝딱! 집 나와라, 뚝딱!"
  그러자 금덩이가 와르르 쏟아지고,  비단옷이 나오고, 대궐 같은 집이 생겨났어요.  마침내 방이는  큰 부자가 되었어요. 이  소식을 들은 동생은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어요. 형의 이야기를 낱낱이 들은 동생은 그  날 밤 당장 그 골짜기로 달려가 바위 틈에 몸을 숨겼어요. 밤이 깊어지자  정말 형의 말대로 도깨비들이 몰려 나와 방망이를 두드리며 놀았어요. 그  때 느닷없이 동생은 방귀를 뽀-옹 뀌고 말았어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도깨비 중에서 험상궂게  생긴 놈이 눈을 부릅떴어요. 마침내 동생은  도깨비에게 붙들리고 말았어요.
  "에잇, 이놈 혼 좀 나 봐라. 코야 커져라, 뚝딱!"
  욕심을 부리던 동생은 코가 코끼리 코만해져서 돌아왔어요.
  이러한 이야기에서 나온  '내 코가 석 자'라는  말은 자기 처지가 급하게 되어 남을 도와 줄 여유가 없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숙맥>

 

주희는 중국 송나라의 훌륭한 학자예요.  훗날 사람들은  주희를 높이 기리어  '주자'라 부르며 공자, 맹자의  뒤를 잇는 유교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았지요. 그가 집대성한  성리학은 조성 500년 통치의 바탕이 되는 등 우리 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어요.
  어느 날 주희는 형을 앉혀 놓고 방바닥에 콩과  보리를 주르르 쏟았어요. 주희와 달리 주희의 형은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모자랐어요.
  "형님, 잘  보십시오. 요렇게 크고 둥들둥글하게  생긴 게 콩이란 말입니다."
  주희는 콩을 들고  자세히 설명했어요. 형은 질질 흐르는 콧물을  훌쩍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아니.... 그건 보리 아닌가?"
  주희는 답답했지만 형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어요. 주희가 이번에는  보리를 들고 찬찬히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어요.
  "형님, 이게 보리입니다. 보세요.  콩보다 작고, 생긴 것도 콩은 동글동글한데 보이는 납작하죠."
  주희는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콩과 보리를 설명했어요. 콩과 보리를  번갈아 가며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던  형은 그제야 구별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음, 이제 알았어.  둥글고 큰 것이 콩이고, 약간 납작하고  작은 것이 보리지?"
  "예, 형님 맞습니다."
  주희는 가르친 보람이 있자 마음이 흐뭇했어요.
  다음 날이었어요. 주희가 형에게 부탁했어요.
  "형님, 창고에서 콩 좀 꺼내다 주실래요?"
  형은 얼른  창고로 들어가 주희가  얘기한걸 부대째 가져왔어요.  그런데 부대를 들여다본 주희는 할 말을 잊고 말았어요.
  "형님...!"
  "아니, 뭐가 잘못된 거야?"
  "어제 그렇게 얘기해 주었는데도.... 형님, 이건 보리잖아요, 보리!"  형은 무안을 당하자 얼굴이 새빨개졌어요.
  한자 숙어에 '숙맥 불변'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콩과 보리를 한자말로 하면 '숙맥'이에요. 즉 주희의 형처럼 콩과 보리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켜 숙맥이라고 해요.
  요즘에는 이 말을  서로 친숙한 사람끼리 애정이  깃든 핀잔으로 쓰기도 하지요.

 

   <시치미를 떼다>

 

 옛날 어느 마을  사람들이 매사냥을 나섰어요. 우리 조상들은 야생의  매를 길들여 사냥에 이용하곤 했어요.
  "앗, 꿩이다!"
  그 순간, 날쌘 매  한 마리가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꿩을 향해  발톱을 내려꽂았어요. 꿩은 날카로운 매의 발톱에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어요.
  매의 주인이 축  늘어진 꿩을 주우려 하자 얌체  같은 사람 하나가 불쑥 나섰어요.
  "이건 내 매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이건 내 매라구!"
  둘 사이에는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어요. 매 주인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매들의 생심새가 비슷했기 때문에 남의  매를 탐내 자기 매라고

우겨도 뾰족히 할 말이 없었어요.
  "그러지 말고  매와 꿩 중에서  하나씩 고르게. 그리고 앞으론  시치미를 꼭 달게나."
  "시치미라구요?"
  "그렇다네. 시치미란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매의 꽁지에  달아 놓은 이름표지. 그러면 이런 일로 아옹다옹 다툴 일이 없을 것 아닌가?"
  그 날 노인 덕분에 매 주인은 매를 찾을 수 있었어요.
  며칠이 지난 뒤,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매사냥을 나왔어요. 물론 이번에는 쇠뿔로 얇게 만든 이름표를  매의 꽁지에 하나씩 붙들어 매고서 말이에요.
  "시치미만 보면 누구 매인지 쉽게 알 수 있겠지? 이젠 싸울 일이 없겠구나!"
  매의 주인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매를 쓰다듬었어요. 그러나  오늘 역시 매 주인과 얌체 사이에는 또 싸움이 벌어졌어요.
  "이 매는 내 거야!"
  "시치미를 뗀다구 모를 줄 알고? 이건 내 매라구!"
  매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를 질렀어요. 이번에도 매를  탐낸 얌체가 매의 시치미를 떼고서 자기 매라고 무구 우기고 나선 것이지요.
  노인도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혀를 끌끌끌 차며 고개를 내저었어요.
  이렇게 해서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은 알고도 모른 척 딱 잡아뗄 때 쓰는 말이 되었어요.
  우리 주변에도 얌체처럼 시치미를 떼는  뻔뻔스런 사람을 간혹 볼 수 있어요. 이런 사람은 시치미를  떼면 동시에 자기 마음 속의 양심도  함께 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