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재미있는 말의 유래

도루묵,악어의 눈물,판도라의 상자,꿔다 놓은 보리자루

dnssosl 2011. 4. 21. 18:00


     <도루묵>

 

  옛날 조선 시대 때  섬나라 일본은 호시 탐탐('주역'에 나오는 말로 범이 눈을 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 우리 나라를 노리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선조  임금 때 드디어  전쟁을 일으켰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난 거지요. 우리 군사와 의병들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어요. 하지만 신식 무기인 조총을 앞세운 왜군을 당할 수는 없었지요.
  이윽고 왜군이 한양 근처까지 밀고 올라왔어요. 선조 임금은  하는 수 없이 피난길에 올랐어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급작스레 떠난 길이라  피난처에서의 생활은 형편없었어요. 잠자리는 물론이고 음식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백성이 생선  꾸러미를 들고 임금이 계시는  곳으로 찾아왔어요.
  "상감마마께옵서 이런 생선을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신하들은 크게 기뻐하며 그 생선을 요리해서 임금께  바쳤어요. 오랜만에 고기 맛을 본 선조 임금은 생선의 담백한 맛에 홀딱 반했어요.
  "음...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생선은 처음이구나. 도대체 이게 무슨 생선이냐?"  신하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임금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상감마마, 그것은 어떤 백성이 가져온 건데  저희도 처음 보는 생선이옵니다."
  "오, 그런 충성스런 백성이 있었다니!  짐이 그 백성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구나."  이윽고 생선을 바친 백성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어요.
  "음, 네 덕분에 별미를 맛보았구나. 그런데 그 생선의 이름이 무엇인고?"  "예, 묵이라고 하옵니다."
  "허어, 맛에 비해 이름이 보잘것 없구나."  선조 임금은 한동안 생선을 살피더니 무릎을 탁 쳤어요.
  "옳지, 고기의 배  쪽이 은백색으로 빛나는 것이 아주 고귀해  보이니 앞으로는 은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드디어 임진왜란이 끝났어요.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과 같은  훌륭한 장수들이 목숨을 걸고 왜군을 물리쳤기 때문이지요. 다시 궁궐로  돌아 온 임금은 어느 날 피난길에 먹었던 맛있는 물고기가 생각났어요.
  "여봐라, 오늘 저녁에는 은어 요리가 먹고 싶구나."
  그런데 상에 올라온  은어를 맛보던 선조 임금은 얼굴을 찌푸렸어요.  예전의 그 담백한 맛이 온데간데없어진 거지요.

  "이런 맛이 형편없구나. 은어가  이렇게 맛 없는 고기였다니... 도로 묵이라 불러라."
  이래서 묵이라는 고기는 '도로묵'이 되었다가 나중에 '도루묵'으로 바뀌었어요. 흔히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처음 상태로 되돌아갔을 때 '말짱 도루묵이다.'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말이지요.

 


     <악어의 눈물>

 

  심술이는 우산을 쓴 채 교문 앞에 서 있었어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어요.  그 때 왈자가 나타났어요.
  "어? 심술아. 너 왜 여기 서 있니?"  "응, 너랑 같이 들어가려고..."  둘이 사이좋게 운동장을 걸어갈 때였어요.  "이크, 이게 뭐야!"  왈자는 신발과 양말이  엉망이 되었어요. 한쪽 발이 진흙 구덩이에  빠졌거든요. 누군가 장난치려고 일부러 파 놓은 것 같았어요.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지?"
  심술이는 울상이 다 된 왈자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어요.
  그 날 아침  그 진흙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왈자말고도 다섯 명이나 더 되었어요.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은 심술이의 장난이었어요.
  담임 선생님은 심술이를 불러 따끔하게 혼을 냈어요.  "넌 오늘부터 한 달 간 화장실 청소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제발 화장실 청소만은..."
  심술이는 선생님에게 싹싹 빌며 우는 시늉까지 했어요.
  "이 녀석, 화장실 청소  안 하려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군. 한번만 용서해 줄 테니 다른 아이들에게 사과해라."
  악어는 잔인하고 징그럽게  생겼지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마음에도  없이 흘리는 거짓 눈물을 빗대어  '악어의 눈물'이라고 해요. 이 말은 '악어가 물가에서 사람을 만나면 물어  죽인 다음,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려  가며 먹을 것이다.' 라고 한 데서 인용한 표현이에요.
  요즘 정치권에서 온갖 부정을 저지른 고위층 인사가 국민들 앞에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보며 '악어의 눈물'이라 꼬집기도 해요.
  또 악어와 관련된 재미있는  말 중에 '악어 논법' 이란 게 있어요.  이 말은 이집트의 전설에서 비롯되었어요.
  옛날 이집트의 한 여인이 아이를 악어에게 빼앗겼어요.  "제발 불쌍한 제 아이를 돌려주세요!"  여인이 악어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정하자 악어가 말했어요.  "내가 아이를 돌려 줄지, 안  돌려 줄지 어디 한번 맞춰 보아라. 알아 맞히면 돌려 주마!"
  여인은 기가 막혔어요. 만약  돌려 준다고 말하면 안 돌려 줄  거라고 대답할 것이고, 안 돌려 준다고 말하면 돌려 줄  생각이었노라 대답할게 뻔했으니까요. 어떻게 대답하든 잡아먹히기는 마찬가지였지요.

  이처럼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마음대로 해석이 되는 말장난을  가리켜 '악어 논법'이라고 하지요.

 

 

     <판도라의 상자>

 

 

  "에이, 판도라의 상자가 따로 없군!"
  촉새네 아빠는 신문을 보다 말고 혀를 끌끌 찼어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엄마가 돌아보았어요.
  "무슨 얘기가 실렸길래 그래요?"
  "이번에 터진 정치권 비리 얘기지, 뭐. 검찰에서 수사를 시작했는데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떳떳지 못한 검은 돈 거래와 여러 가지 부정한 일들이 마
구 쏟아지고 있군 그래."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촉새가 끼여들었어요.
  "아빠, 판도라는 무슨 과일이에요?"
  촉새의 뚱딴지 같은 질문에 아빠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저도 TV에서 봤어요. 사과 상자에 뭉칫돈을 담아서 검은  돈 거래를 했다면서요. 근데 사과 상자는 알겠는데 판도라는 무슨 과일인지...."
  "하하하...."
  "호호호...."
  촉새의 말을 듣고 엄마와 아빠는 배꼽을 잡고 웃었어요.
  "판도라는 과일 이름이 아니야.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여자란다."
  "그럼, 그 여자의 상자 속에도 돈이 가득 들어 있었어요?"
  "허허허.... 이 녀석이 점점 엉뚱한 소리만 하네.  신화에 보면 맨 먼저 만들어진 인간은 남자였어. 인간들은  처음에는 신의 말에 잘 따랐지. 그런데 점차 난폭해져서 전쟁을  일삼게 되었던 거야.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이를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화가 났지. 그래서  인간을 혼내 주려고  인간에게서
불을 빼앗아  버렸던 거야. 그런데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다시  불씨를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주었어.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큰  벌을 주었지. 그런  다음 인간에게도 벌을 주기 위해 여신의 모양을 본떠 흙으로 판도라라는 여자를 빚게 했어. 그리고는  그 여자에게 아름다운 얼굴뿐 아니라 간사한  마음씨와 말재주도 함께 불어넣었어. 그런 다음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데리고 갔는데,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보고 첫눈에  반해 판도라를 아내로 맞이했던  거야. 판도라는 제우스로부터 받은 선물 상자를  하나 갖고 있었지. 그 상자는 절대로  뚜껑을 열어 봐서는 안 되는 상자였어. 그런데 판도라는 호기심이 많았어.  어느 날 남편이 일하러 간 사이  그 뚜껑을 열어  보았던 거야. 그랬더니 거기서  괴상한 연기와 함께 온갖  고통과 재앙, 질병 등이 튀어나왔지. 놀란 판도라가 얼른 뚜껑을 닫는 바람에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게 되었어. 오늘날 인간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란다. 그 상자는 제우스가  인간을 벌주려고 만든 것으로 괜히 건드렸다가 온갖 재앙과 나쁜 일들이 수두룩하게 생기는 것을 보고 판도라의 상자라고 말하는 거야.  아빠가 아까 신문에서 본 정치권 사건도 만찬가지고.... 이제 알겠니?"

 

 

     <꿔다 놓은 보리자루>


 연산군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소홀한 채 술과 놀이만 일삼던 임금이었어요.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자 나라는 점점 어지러워졌어요.
  "허어, 왕께서 허구한 날 술과 계집의  치마폭에서 헤어날 줄을 모르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오."
  "그러게 말이오. 옳은 말을 하는 신하는  멀리하고 간신들의 아첨에만 귀를 기울이니.... 원, 참."  "뜻 맞는 사람끼리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임금을 몰아 내든지 해야지, 원."
  "쉿! 누가 듣겠소. 자, 사람들 눈을 피해 조용한 데서 얘기합시다!"
  연산군의 그런 행동을 보다못한 몇몇 신하들이 비밀리에 일을 꾸미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성희안, 박원종 등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잡고자 뜻을 모았어요.
  "오늘 밤  모두들 박원종의 집으로  모이시오. 마지막으로 내일 할  일을 점검해 보아야겠소."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다 모이자 성희안은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자 각자  어떤 일을 맡았으며,  준비에 차질은 없는지 돌아가면서  말해 보시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어요. 모두 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오직 구석에 앉은 한 사람만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하지만 달빛
도 없는데다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촛불도 켜지 않은 터라,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성희안은 가만히 모인 사람들을 세어보았어요. 놀랍게도 모이기로  한 사람보다 한 명이 더 많았어요.
  "박 대감, 엄탐꾼이 들어와 있소."
  박원종도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염탐꾼이 있다면  내일 벌이기로 한 큰 일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 모인  사람들도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염탐꾼은 보이지 않았어요.
  "성 대감, 대체 누굴 보고 그러시오?"
  성희안은 말없이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성희안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던 박원종은 껄껄 웃었어요.
  "하하하! 성 대감,  그건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내일  큰 일을 위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요."
  정말 자세히  보니 보릿자루였어요. 그런데  거기에 누군가 갓과  도포를 벗어 놓아 영락없이 사람으로 보였던 거지요.
  "허허, 내가 너무 긴장했나  보군. 꿔다놓은 보릿자루를 사람으로 착각하다니...!"
  그 뒤로 어떤 자리에서 있는 둥  없는 둥 말없이 그저 듣고만 있는 사람을 가리켜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