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을 위한 알기 쉬운 기독교 (37)
입력 2012-05-24 21:13

자살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①
■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자살하면 무조건 지옥에 갑니까?
■ 요즈음 연예인들의 자살이 많아졌는데, 그 중에는 기독교인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기독교인이 자살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요?
■ 자살충동을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기적 자살, 개인이 집단서 고립될 경우 발생
운명론적 자살, 질병 등 절망 상황서 탈출구로
높아가는 자살률
국어사전에서는 자살을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이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 자기의 삶을 스스로 포기할 때 일어나는 극단적인 행동이 자살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자살률이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특히 사회지도층이나 연예인들의 자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파급 효과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나아가서 그들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입니다. 또한 인터넷상에 자살카페가 만들어지고 그 공간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만나서 동반자살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통계청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인구 10만명당 31.2명이란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국가 평균인 13명 보다 2.4배나 높은 편이며, 이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단연 1위가 됩니다<표 참조>.
자살의 유형
에밀 뒤르켕(E. Durkheim)이라는 프랑스의 사회학자는 자살이론의 선구자인데, 그는 자살을 개별적 행위로만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살행위가 사회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거나 강요당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고, 그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 이기적인 자살
이기적 자살(egoistic suicide)이란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임을 잊고 스스로 생명을 끊는 자기중심적 행위를 말합니다. 즉 개인이 그가 속한 사회집단 내에 강하게 통합되지 못할 때, 개인이 집단으로부터 유리되어 고립되거나, 자신을 동료들과 연결시켜 주던 결속이 약화되고 자신의 욕망에만 내맡겨질 때 일어나는 자살을 말합니다.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보다, 미혼자가 기혼자보다 자살률이 더 높은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사회집단이 강력하게 통합되어 있을 경우 그 사회집단은 개인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기에 개인이 고의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행동을 못하게 할 수 있다는데 기초합니다.
(2) 이타적인 자살
이타적 자살(altruistic suicide)은 문자 그대로 타인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자살은 사회적?민족적 연대감과 책임감이 강할 때 집단을 위해 개인의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현상입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던 독립투사들이나 민주화 열사들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며, 차원은 다르지만 전체주의하에서의 자살공격대 역시 또 하나의 예가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서 남편의 사망에 따른 부인의 자살, 주인의 사망에 따른 하인의 자살, 또는 정치적 메시지의 전달수단으로서 자기 파괴적인 행위, 집단의 목적을 위한 단식투쟁, 또는 반전 평화운동으로 분신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이타적 자살은 마지막 생명을 포기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점에서 개인에게 위험한 매력이기도 합니다.
(3) 아노미성 자살
아노미성 자살(anomic suicide)은 사회가 무질서하게 붕괴되는 상황에서 일어납니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위기 등으로 인하여 사회의 가치기준과 규범, 윤리관, 세계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사회의 급속한 변화는 개인에게 그 적응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때 개인은 사회에 대한 적응이 갑자기 차단되거나 와해되는 위험성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제적 파산, 사회경제적 공황상태, 또는 갑작스러운 신변의 변화 등은 개인으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고, 무력감을 경험하게 하면서 자살로 유도될 수 있는 것입니다.
(4) 운명론적 자살
운명론적 자살(fatalistic suicide)은 절망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자살입니다. 자기의 삶의 조건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때 일어납니다. 경제적 파산을 맞았거나, 치명적 질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거나, 감옥 또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을 경우에도 흔히 이런 자살을 시도합니다. 운명론적 자살은 자아의 약화와도 관련성이 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그것을 도저히 견디어 내거나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자살로 탈출구를 찾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런 현상은 자아의 약화와 동시에 자기 연속성(self-continuity)과 자기 보존성(self-preservation)의 약화와도 관련됩니다. 사회적 환경이나 개인의 여건에 변화가 일어날 때, 자기 보존 능력이 결여된 사람은 자살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운명론적 자살은 사회적 여건과도 상당한 관련성을 갖고 있지만, 개인적 요소가 더 많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네티즌을 위한 알기 쉬운 기독교 (38)
입력 2012-05-31 18:03
- 자살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②
■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자살하면 무조건 지옥에 갑니까?
■ 요즈음 연예인들의 자살이 많아졌는데, 그 중에는 기독교인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기독교인이 자살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요?
■ 자살충동을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청소년 자살의 동기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또래 청소년의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러한 청소년의 자살은 성인들에 비해 그 동기, 유형, 성격에서 몇 가지 특징을 지닙니다.
(1) 도피성 자살
청소년들의 자살동기에서 가장 많은 원인이 도피성 자살인데, 도피성 자살이란 고통으로부터의 회피 및 도피하려는 욕구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 경우의 스트레스 상황이나 심각한 갈등상황은 이들의 도피성 자살을 부추길 위험이 높아집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청소년은 대부분이 수동적이고 내성적이며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도피성 자살의 경우에도 그 밑바탕에는 일종의 죽고자 하는 심리가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칼 메닝거(Karl Menninger)는 ‘자살을 자신을 향한 살인(homicide)’이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여기에는 죽이고자 하는 소원, 죽임을 당하고자 하는 소원, 그리고 죽고자 하는 소원이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2) 보복성 자살
보복성 자살은 타인에게 보복하려는 목적으로 시도합니다. 이런 보복성 자살은 스스로를 파괴함으로써 실제로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타인을 벌주려는 가해적인 성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보복성 자살은 반전살인(反轉殺人)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죽음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타인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최후의 방편으로 자살을 선택합니다. 따라서 자극적인 언어는 청소년을 위험한 곳으로 몰아갈 위험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는 1등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는 부모의 꾸중이나 ‘돈을 네가 훔쳤지?’ 하는 추궁 등의 경우, 이에 반발하거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내가 죽음으로써 너희도 고통을 받아라’라는 보복적 심리가 작용하기 쉬운 것입니다. 보복성 자살이 가족 내 갈등이 많은 청소년들에게서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3) 자기 처벌성 자살
자기 처벌성 자살은 스스로를 처벌하고자 하는 심리에 기초하며, 양심의 가책을 유난히 잘 받는 청소년들이 선택하기 쉬운 자살입니다. 청소년은 부모의 기대심리가 높으면 그에 따른 대응적 방법으로 일정한 행동을 취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자신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독립성이 부족하거나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절망감 또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죄책감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못난 나를 용서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함으로써 자신을 응징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입시 경쟁이 심한 우리의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자기 처벌성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자살 외에도 욕구좌절성 자살이나 새로운 미래와의 만남을 위한 자살도 있습니다. 자신이 갖고 싶고 하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자살을 시도하는 욕구좌절성 자살은 대개 성질이 급하고 인내력이 없으며 자기중심적인 청소년, 그리고 욕구가 좌절될 때 심한 분노와 발작을 보이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품행장애 청소년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반면에 새로운 미래와의 만남을 위한 자살은 현실보다는 이상향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종종 나타나는 증상으로서 현실생활이 어렵고 불행하고 힘들다고 판단될 때 그 출구를 자살을 통해 찾으려 합니다. 죽은 다음 저 세상에서 만나고 후세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환상적 욕구 등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의 특징
첫째로, 청소년의 자살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부모로부터 심한 꾸중이나 심리적 좌절, 외모에 대한 고민, 이성 친구와의 헤어짐, 성적저하, 왕따, 입시실패 등을 겪을 때, 또는 우울증이나 자기애적 성격장애, 품행장애, 충동성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지닌 청소년들의 경우 언제 어떻게 자살을 시도할 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둘째로, 청소년의 자살은 충동적입니다. 불안정하거나 정서적 지지가 결여된 가정환경에 처해 있는 청소년의 경우 자살 충동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성인의 경우에는 견디기 힘든 우울감, 절망감, 무기력감 등 자신의 위기상황에 대한 신중한 평가가 자살을 결정짓는 큰 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청소년의 경우는 충동성이 매우 큰 결정 인자가 됩니다. 신중하게 자살을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나가 죽어 버려라’는 부모의 한 마디에 충동적으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사건이 있을 때 자기 분노에 못이겨 충동적으로 자살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셋째로, 청소년의 자살은 모방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청소년은 모방하기 좋아하는 세대여서 같은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그리고 가정 학교 또래집단으로부터 소외된 청소년들에게서 모방자살이 많이 발생합니다. 이런 모방적 성격은 사회적으로 유명한 연예인들의 자살이 보도될 때 청소년들의 자살이 증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흠모하는 유명인이 자살하면 그들의 자살을 미화하고 모방하고자 하는 것이 청소년 자살의 특징이며, 이 경우 대개 자살의 방법까지 모방한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네티즌을 위한 알기 쉬운 기독교 (39)
입력 2012-06-07 18:17
자살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③
■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자살하면 무조건 지옥에 갑니까?
■ 요즈음 연예인들의 자살이 많아졌는데, 그 중에는 기독교인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기독교인이 자살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요?
■ 자살충동을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살에 대한 신학적 견해
소크라테스는 “신이 어떤 필연성을 부여하기까지 인간은 자살할 수 없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살을 “정치적 공동체 안에서 타인에 대한 불의한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칸트(I. Kant)는 “인간이 인격 속에 있는 도덕성의 주체를 파괴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와 함께 도덕성 자체를 이 세상으로부터 말살시키는 것과 같다”고 했으며, 실존주의 작가인 까뮈(A. Camus)는 “삶이란 유일한 인간적 가치이며, 삶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부조리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락탄티우스(Lactantius, 250∼317)라는 초대교회 지도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태도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신학자였는데, 그의 저서 ‘신의 교훈’에서 “자살자는 살인자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의적이 아닌 것처럼, 세상을 떠날 때도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야 떠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은 사도바울 이후 신학사상을 크게 발전시킨 신학자인데, 그는 “자살은 육체를 더럽히는 행동이 아니라, 영혼을 더럽히는 행동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는 신학체계를 가장 잘 집대성한 신학자인데, 그의 저서 ‘신학대전’에서 자살은 첫째, 자신을 사랑하라는 자연법을 거역하는 행위며, 둘째, 공동선과 집단에 손해를 끼치거나 모독이 될 수 있으며, 셋째, 생명에 대해 절대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자살에 대한 이 세 신학자들의 견해는 오늘날까지도 불변의 지침이 되고 있으며, 현대 신학자들의 견해 역시 이 세 분의 견해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살은 인간이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라는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2) 자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동이다.
3) 자살은 독생자를 보내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4) 자살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거부하는 행동이다.
5) 살인을 금하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살에도 적용된다.
6) 자살은 회개와 용서를 불가능하게 한다.
7) 사람의 생명은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절대가치이다.
8)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야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자살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중세 그리스도교 법에 따르면 자살을 기도한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었으며, 자살자를 위한 교회에서의 장례예식을 거부했고, 자살자가 교회묘지에 묻히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에 대한 다양한 사회학적 분석과 자살자에 대한 사회적?공동체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자살에 대한 이러한 전통적인 입장은 상당부분 수정되고 있습니다. 자살의 다양한 원인(생활고, 병고, 왕따, 폭력, 성적저하, 비관, 가정불화, 양심의 가책, 결백의 주장, 배신감, 실연, 정신질환 등)에 비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자살한 사람에게만 돌려온 점을 반성하면서 자살을 강요하는 환경적 여건에 대해 사회적·신앙공동체적 연대책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살과 구원의 문제
자살하면 모두 지옥에 가는가? 기독교인이 자살하면 구원받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고, 결코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자살의 동기와 원인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불치병에 걸려서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억지로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미 여러 나라에서 환자가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 또는 안락사의 문제를 합법화해가는 추세에 있습니다. 또는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살에 대해 성경에는 예외적 경우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일로 순교하는 경우이고(눅 9:24), 둘째는 남을 위하여 순직하는 경우입니다. 자살한 삼손은 신앙의 영웅으로 찬양받았으며 (히 11:32∼34),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요 15:13)고 하셨으며, 바울사도는 “그리스도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신다”(롬 14:9)고 하셨습니다. 또한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기에 순결을 잃기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많은 여성들 중 많은 이들이 성인으로 추앙받았습니다. 따라서 모든 자살을 똑같은 심판의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육체의 죽음 이후의 문제, 천국과 지옥의 문제, 구원의 문제 등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하는 신비의 차원이기에 구원의 문제를 인간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성경 전체의 가르침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믿음으로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구원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심판주가 되어 섣부른 잣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종합해 보면, 그리스도인의 자살의 문제는 심한 정신병적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결국 믿음과 관계될 것입니다. 욥처럼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인임을 믿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포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네티즌을 위한 알기 쉬운 기독교 (40)
자살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④
■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자살하면 무조건 지옥에 갑니까?
■ 요즈음 연예인들의 자살이 많아졌는데, 그 중에는 기독교인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기독교인이 자살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요?
■ 자살충동을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자살 예방을 위한 몇가지 지침
최근에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젊은 연예인들, 대학생들, 중·고등학생들의 자살 그리고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노인층의 자살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신앙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살 예방을 위한 몇 가지 대책을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기독인 역시 정신건강 수시로 체크를
1) 정신건강을 수시로 체크하자.
기독교인들에게도 정신건강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인들 역시 비신앙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살의 다양한 원인과 동기(우울증, 사업실패, 생활고, 불치병, 왕따, 폭력, 가정불화, 양심의 가책, 결백의 주장, 배신감, 실연 등)를 지닌 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독교인 중에는 잘못된 신앙생활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질병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정신적 질병은 대개는 특정한 신앙형태, 즉 열광주의적 신앙이나 권위주의적 신앙에 빠진 경우, 또는 시한부 종말론과 같은 사이비 신앙 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심한 경우, 신앙생활이 현실생활과의 균형을 잃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증상 역시 일종의 정신질환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도 수시로 정신건강을 체크하고 치료받아야 합니다.
2) 영적 건강을 중요시 하자.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건강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활력을 잃게 되면 각종 병리적 현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며, 영적 건강이 쇠약해지면 일상생활에서도 활력을 잃게 되고, 나아가서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울증은 흔히 소심하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잘 나타나며, 이들은 대개 사회생활을 착실히 하고 사회의 도덕규범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 특히 교회생활도 모범적인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어느 날 절망감, 허무감, 삶의 무의미 등에 빠지게 되며 그 증상이 우울증으로 발전되기도 합니다. 평소에 신앙적으로 잘 무장하고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라는 성경말씀은 영적 건강이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세상만사의 기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3) 신앙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강화하자.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운명적 예속으로부터 이미 해방되었고, 우리 자신의 죄의 짐으로부터도 해방되어 우리를 구원하신 분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때부터 육을 따라 살지 않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삶 자체가 곧 하나님의 은총이고,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본질로 무장하여 삶의 의미를 강화해야 합니다. 잘못된 신앙이나 형식적인 신앙은 삶 속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무기력은 곧 삶의 의미상실과 직결되고, 그것은 곧 정신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이는 신앙의 본질과 관련하여 삶의 의미를 강화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철학자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4) 체험적 신앙생활을 훈련하자.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는 체험적 차원이 있어야 합니다. 체험적 신앙은 신앙생활에 열정이 있게 하고, 삶에서는 생동감을 발휘하게 하며, 삶 속에서 만나는 여러 위기를 이겨낼 수 있게 만듭니다. 현대인들은 경험을 중요시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그저 머리로 이해하기 보다는 자기의 것으로 체험하고 싶어 하며, 예배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생활에서도 활기가 넘치게 되고, 무의미의 심연이나 나락에 빠지는 일이 없으며,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사는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할 것입니다. 체험적 신앙을 강조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5) 자기노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자살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조사결과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하는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은 목회자를 찾아 상담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혼자 고민하며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결행하는 특징을 지닌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가톨릭의 고백성사는 자살예방에도 많은 효과가 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목회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이유는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신뢰를 얻지 못한데 그 이유가 있거나, 아니면 지금까지 한국교회들이 추구해온 가치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성공한 삶, 행복하고 그늘 없는 삶만이 참 신앙의 결과인 것처럼 가르쳐온 신앙관 때문에 실패한 사람,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는 사람은 마치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기 때문에 그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겪는 고민과 갈등, 시련과 아픔을 목회자, 가족, 친구 또는 교회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털어놓고 함께 나눠야 합니다. 자기노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개방함으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신앙공동체의 일원임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자살충동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팔을 벌려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강영선 한신대 교수
'그리스도의 향기 > 네티즌이 알기쉬운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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